2015년 6월 라브리 소식편지

존경하는 라브리 기도가족에게 올립니다.

그동안 주 안에서 평안하십니까? 먼저 농촌에 비가 오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이곳 양양 지역은 몇 달 째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합니다. 저수지도 거의 말라가고 강바닥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모내기를 한 사람들은 물이 더 필요하다며 걱정이지만, 밭농사를 짓는 이곳 노인들은 단오절까지만(6월 20일) 비가 온다면 흉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몇 가지 감사의 기도 제목도 알려드립니다. 먼저 충성 간사는 양양과 라브리에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청년들이나 어른들과도 잘 어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맞는 식사를 잘 준비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하나씩 잘 익히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청년 대학생들의 고민과 아픔을 잘 읽고 적절하게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을 잘 기를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성, 슬아 선교사 부부는 세 아이와 함께 백암당에서 행복하게 잘 지냅니다. 슬아 선교사는 식사 준비와 세 아이 키우는 것도 벅찰 텐데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진성 선교사는 마이다스의 손길로 라브리의 곳곳을 손 보고 있습니다. 두 분이 공부와 노동 그리고 봉사에 균형을 잘 맞추어 재미있고 알차게 인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봄에도 진로와 진리를 찾는 대학생 청년들이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몇 사람을 빼고는 거의가 2박 3일 혹은 1 주일 미만을 지내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깊은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도 많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안 올까봐 간사들의 마음이 조급해 지기 쉬웠습니다. 부탁입니다만, 라브리의 도움이 꼭 필요한 청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도록 계속 기도해 주시되, 간사들이 하나님의 인도에 민감하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게도 그 중에 약 10주 가까이 저희와 같이 공부한 청년도 있는데 바로 수학 천재 명인씨입니다. 명인씨는 허리가 아픈데도 다음 학기부터 헬퍼(helper)로 일하며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도 양양 장리교회 성도들의 방문, 백석대학교 교수님들의 방문, 삼송제일교회 정대운 목사님과 그 교회 구역장들과 2박3일을 같이 보낸 것 등은 저희들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까지 찾아온 외국인들입니다.

연세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학생 줄리아(Julia)는 6월에 다시 방문해서 세례를 받기로 했고, 미국 영어 교사 제임스(James)는 기독교 교리를 튼튼히 세우기 위해 책을 많이 빌려갔으며, 캐나다 영어 교수 로버트(Robert)는 한국에 와서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인데 성경에 대한 질문을 갖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고, 라오스에서 온 의사 참파뎅(Champadeng)은 자기 나라에 암센터를 세우기 위해 현재 국립안센터에서 역학을 연구하고 있는 분인데 이틀을 머물고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케냐 지도자들인 목사, 변호사, 의사 등 18명에게‘한국교회의 성장과 쇠퇴의 패턴’이라는 강의를 했습니다. 그 분들은“마사이족의 영적 아버지”로 불리는 안찬호 선교사님으로 주선으로 양양중앙감리교회(전인석 목사)와 통일전망대와 DMZ를 방문할 목적으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케냐감리교회 감독도 한 분 계셨는데, 케냐 교회도 한국교회와 비슷한 쇠퇴의 과정을 겪고 있다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에도 후원금을 꾸준히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은 전화 받기가 무서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후원을 중단하시는 바람에 집수리 등 모든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라브리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때를 잘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직장이 필요한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친구에게 다른 친구의 비밀을 일러바친 적이 있거나,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고자질 하는 것을 들은 적은 없습니까? 고자질은 가장 더럽고 치사한 짓이며,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시는 것인데, 거짓말과 함께 인간 역사 이례로 가장 흔한 입버릇 중에 하나로 통합니다. 그리고 정치계나 국제관계에서도 고자질이 많습니다.

일전에 JTBC에서도 고자질에 대해 특집을 다룬 적이 있는데, 그 때 손석희 아나운서가 말하기를, “왠지 고자질은 부정적인 의미 같고, 고발은 긍정적 + 공익의 느낌이 들지만, 결국 두 개 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이야기 하는 일이다.”라고 잘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토론의 여지를 남겨둔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무엘상 21, 22장, 시편 52편을 통해, 다윗과 아히멜렉을 사울 왕에게 고자질한 도엑 사건에서‘고자질의 메카니즘’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한국 라브리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는 제가 쓴 글을 참고하시든지 라브리로 연락을 주시면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1) 고자질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고자질을 잘 하는 사람은 없으나 본성상 인간은 누구든지 고자질을 할 수 있습니다. 도엑은 에돔 족속이었는데, 성경에서“에돔 족속”이란 말은 에서처럼 장자권보다 배고픔을 해결해 줄 팥죽 한 그릇을 선택하거나, 하닷처럼 다윗을 피해 애굽으로 가서 바로 왕의 처제와 결혼해서 편안하게 살다가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후에는 돌아와서 괴롭히는 등 간사하고 이중적이고 음흠한 성격(sinister character)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창세기 25:30, 열왕기상 11:14-25) 남의 비밀이나 잘못을 가슴에 묻어두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비 고자질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고자질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도엑은 사울의 신하이면서 사울 왕의 개인 염소 목장의 목자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쩐 연유인지 그는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있는 하나님의 처소에서“여호와 앞에 머물고 있었던”사람이었습니다.(사무엘상 21:7) 여기에“머문다”는 말은 ‘붙잡혀 있거나 연금된 상태’를 말할 때 쓰인 단어라고 합니다.(예레미야 36:5, 느헤미야 6;10) 스토베(Stoebe)라는 사람을 이것을 두고 “도엑이 항복한 포로로서 성전에 붙잡혀 있었거나, 신탁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 혹은 모종의 속죄 행위를 수행하고 있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도엑은 매일 만나던 사람을 고자질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3) 고자질은 연고주의 혹은 계파정치의 필요악입니다. 사울은 신하들이 고자질을 쉽게 할 수 있도록‘3중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고자질을 부추겼습니다. 그는 한 손에는 창을 들고 협박을 하면서, 다른 한 손에는 땅이라는 보상을 은근히 약속했으며, 입으로는 혈연에 호소했습니다. 특히“너희 베냐민 사람들아.”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나라 말로는“우리가 남이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베냐민 지파 중심의 계파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고주의, 편애사상, 계파정치는 그 성격상 고자질이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

(4) 고자질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몰래 일러바치는 것입니다. 사울이 신하들에게 부추긴“고발”은 히브리말로 ‘갈라(galah)’라는 말인데, ‘수치스럽거나 불명예스러운 것을 벗기다’, ‘몰래 일러바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부추긴“고발”은 고자질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비밀을 몰래 일러바치라고 부추긴 것입니다. 다윗은 도엑의 이런 고자질에 대해 악한 계획, 날카로운 삭도, 거짓말, (사람) 잡아먹는 말, 간사한 혀라고 했습니다.(시편52:2-4) 고자질은 제3자가 불법을 고발하는 것과도 다르고, 내부고발이나 보고와도 다릅니다.

(5) 고자질은 남을 해치고 반사 이익을 노립니다. 도엑이 사울 왕에게 일러바친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아히멜렉이 다윗의 앞날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먹을 것을 주고, 골리앗의 칼을 주었다는 그것이 그것입니다.(사무엘상 22:8,9) 겉으로 보기에는 그 세 가지는 도피 생활에 필요한 평범한 것들처럼 보이지만, 모략가들에게는 기도는 신탁으로, 먹을 것은 왕 같은 제사장 취급, 칼은 다윗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모두 반역 모의로 해석될 수 있는 위험한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도엑은“아히멜렉이 여호와께 물었고(he enquired)”, “그가 (칼을) 주었고(he gave)”, “그가 (빵을) 주었다(he gave)”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아히멜렉을 적극적인 공모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 도엑은 만만한 아히멜렉을 희생양으로 삼고 사울의 신임과 보상을 반사이익으로 챙기려 했을 것입니다.

(6) 고자질을 이기거나 대응할 방법은 없습니다. 고자질에 대응하는 흔한 방법에는 침묵, 맞고자질 혹은 맞고소, 적극적인 변호, 죽음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대제사장 자리를 빼앗길까봐 걱정이 되어 침묵하지도 않았고, 사울왕의 칼이 목에 들어올 것이 무서워서 다윗을 팔아넘기지도 않았고, 가족과 동료들의 희생이 염려되어 왕에게 해야 할 변호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아히멜렉은 두 가지를 변호했는데, 다윗은 반역을 모의한 적이 없었으며 자기도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는 것입니다.(사무엘상 22:14,15) 아히멜렉은 연약한 사람이었으나 그렇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했습니다. 만약 아히멜렉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도엑을 용서했을 수는 있겠으나 그 사람을 믿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7) 고자질에는 변명하기보다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은 도엑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사무엘상 22:22)라고 말하며 자기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실수는 “빵 다섯 덩어리를 주세요.”(사무엘상 21:1-2)라고 하므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폭로하고 다닌 것이며, 도엑이 사울에게 일러바칠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사무엘상 22:22) 그리고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나왔으면서도 마치 왕의 명령으로 공적 업무를 수행하러 온 것처럼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사무엘상 21:1-3) 다윗은 자기 실수와 죄를 고백했습니다.

(8) 고자질의 대가는 두고두고 갚아야 합니다. 먼저 자기 손에 피를 묻혀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부터“당신도 유명한 사람이라면서?”라는 놀림과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시편 52:1-2, “악한 자여”라고 번역된‘깁볼(gibbor)’이란 히브리 말은 ‘영웅’, ‘강한 용사’, ‘전사(戰士)’, ‘유명한 사람’이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합니다.) 두고두고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내시리라.”(시편 52:5)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후손의 씨가 마르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에돔 사람 18,000 명이 다윗의 손에 죽었고(사무엘하 8:13,14), 군대 장관 요압을 통해 에돔 족속의 씨를 말릴 정도로 전멸하게 되었습니다.(열왕기상 11:15,16) 고자질의 참혹한 대가를 기억하는 것도 입을 조심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2015년 5월 28일

봄 학기를 마치고 성인경 올림

L'Abri Newsletter, June 2015

May 28, 2015

Dear L’Abri praying family,

First, please pray for rain. Most of Korea is suffering from a severe drought. It has not rained enough for months in Yangyang. The reservoirs and riverbeds are drying up. Farmers are very concerned; some have even given up on planting anything this year.

Even so, we have several things to be thankful for. First, ChungSeong seems to be adjusting well to Yangyang and L’Abri. He hangs out well both with the young and the old, serves visitors with delicious food, and is properly learning things one by one. Please continue praying that he will soon learn to perceive well the troubles and sufferings of young people.

JinSeong and Sul-Ah are living happily with their three children in BaekAm House. Sul-Ah, in spite of her busy routine preparing meals and raising three children, is splitting her time to study English as well. JinSeong is taking care of every corner of our house, and everything he touches is fixed as if he were Midas. Please pray that their family will be able to balance their studies, work, and volunteering activities while enjoying a fruitful internship in L’Abri.

God sent us many young people searching for the truth and a direction for life. However, since most of them spent less than a week here, there were seldom opportunities for deep conversation. We get anxious that we may not be able to help them in their hour of need. Please continue praying that God sends us those in need, and also that we workers can provide the help they need.

Thankfully, one of the students, MyeongIn, a math prodigy, stayed with us for about ten weeks. Despite his terrible back pain, he has applied to study and work with us as a helper. Also among other guests were the members of Jang-ri Church, a group of professors from BaekSeok University, and Pastor Jeong, who along with with leaders from his SamSong First Church stayed with us for two nights and three days. Each visit was a brand-new experience for us.

We would like especially to thank God for the foreigners who came all the way to Yangyang to stay with us. Julia, a foreign student who is studying at Yonsei University, will be visiting us again in June to receive her long overdue baptism. James, an English teacher from America, borrowed a dozen books from us to strengthen his foundation of Christian doctrines. Robert, an English professor from Canada who lost his faith after coming to Korea, promised to return with more questions about the Bible. A doctor from Laos, who is studying epidemiology at the National Cancer Center of Korea, stayed with us for two nights.

I recently gave a lecture, about the growth and decline of the Korean church, to a group of eighteen people—pastors, lawyers, and doctors—from Kenya. Led by Missionary ChanHo Ahn, the “spiritual father of the Masai people,” they came to visit Yangyang Central Methodist Church (Pastor InSeok Jeon) and the Unification Observatory in the DMZ. Among them was the director of a Kenyan Methodist Church, who asked for prayer since Christianity in Kenya is undergoing a similar process of decline as the Korean church is.

I am especially thankful to those of you who have continued to support L’Abri amidst the general economic depression. I’ve become afraid to receive phone calls lately, as there have been so many calls of apology from people who are no longer able to support us. We had to stop almost all construction work, even vital maintenance. Please pray that L’Abri and those in need would be able to go through this financial hardship. Please pray in particular for the youth who are looking desperately for a job.


Have you ever told a friend on another friend’s secret, or heard someone telling on another? Telling on, or "snitching", is one of our dirtiest and most shameful behaviors, much disliked by God, yet one of the most common incidents found throughout history. There is much snitching in polit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as well.

In a TV special on JTBC, Seok-Hi Son said: “snitching seems to have a negative meaning, whereas an official criminal charge feels positive and seems to serve the common good. Yet in the end, they both tell others about someone else’s wrongdoing.” His analysis left room for much debate.

In this paper, I’d like to share my thoughts on the mechanisms of snitching, based on 1 Samuel 21-22 and Psalm 52. It is the story of a character named Doeg, who snitched on David and Ahimelech to King Saul. (For further reading, please consult my paper in the online library of our website, or contact L’Abri.)

First of all, everyone can snitch. Although no one is born an adept snitcher, of course, our nature enables each of us to become one. Doeg was an Edomite. In the Bible, the word “Edomite” is used to describe a person with a cunning, hypocritical, and sinister character. An example would be Hadad, who fled to Egypt away from David, led a complacent life after marring the king’s sister-in-law, but came back to Israel to cause trouble when Solomon inherited the throne. (1 Kings 11:14-25) Another example is Esau, who chose a bowl of lentil stew to quench his momentary hunger over the right of primogeniture. (Genesis 25:30) Any person who cannot silently bury others’ secrets or wrongdoing in one’s heart is a potential snitcher.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someone close to you can snitch on you or vice versa. Doeg was Saul’s chief shepherd, but somehow he was “detained before the Lord” in the temple where the priest Ahimelech was. (1 Samuel 21:7, ESV) The word “detained” indicates that he is “restricted,” “banned from going,” “shut in,” or “confined.” (Jeremiah 36:5, Nehemiah 6:10, ESV and NIV) On this, Stoebe wrote that “Doeg could have been kept in the temple as a prisoner, waiting for a divine revelation, or enacting some kind of ritual for atonement.” Perhaps in order to get out of such a bind, Doeg snitched on someone whom he encountered on a daily basis. We could all do the same.

An environment of nepotism and factional conflict encourages snitching. Saul fostered such a hostile atmosphere. In one hand, he held his spear and threatened others to obey him; on the other hand, he stealthily promised material reward for those who helped him. With his lips, he appealed to blood ties: “Hear now, men of Benjamin,” (1 Samuel 22:7, ESV) says Saul. It is the same idea as the infamous Korean saying, “Don’t you know me?” Despite having been anointed as the king of all twelve tribes, Saul practiced nepotism, favoring his own tribe. The dirty act of snitching will never disappear as long as there is nepotism and favoritism.

Snitching is a secret disclosure of other people’s secrets. The “disclosure” that Saul encouraged among his subordinates is galah in Hebrew, which means “to uncover, reveal, or expose something shameful or dishonorable.” Saul incited the telling of one another’s secrets and wrongdoing. David describes this policy as one of lying, deceit, and evil, like a tongue plotting destruction and a sharp razor. (Psalm 52:1-4, ESV) Secrecy defines snitching, distinguishing it from an official report to the authorities, whistle-blowing, or reporting.

The aim of snitching is to gain personal benefits at the expense of others. Doeg told Saul three things: that Ahimelech prayed to God for David’s future, that he gave him food, and that he gave him Goliath’s sword. (1 Samuel 22: 9-10) Prayer, food, and a sword were not merely what a refugee needed. To the schemers in Saul’s court, prayer could be interpreted as an oracle, the food as a gesture to treat David as an equal to the priests and kings, and the sword as a symbol of David’s glory. In other words, they were symbols of treason. Doeg emphatically repeats the words “Ahimelech inquired,” “gave him” and “gave him,” presenting Ahimelech as an active co-conspirator in David’s treason. Doeg probably wished to gain Saul’s trust and reward by making a scapegoat of Ahimelech.

There is no real way to win over or cope with snitching. You could remain silent, snitch back or sue back, actively defend yourself, or face death. However, Ahimelech did not remain silent, anxious of his social standing. He did not sell David over, afraid of Saul’s sword. Nor did he give up defending himself, worried for his friends and family. Ahimelech defended himself by explaining two things: that David never plotted treason, and that Ahimelech himself had never heard of it. (1 Samuel 22: 14-15) Although Ahimelech not a strong man, he refused to negotiate with the unrighteous. With death, he and the other priests demonstrated their innocence. Had Ahimelech survived, he may have forgiven Doeg; but as a wise man, he would not have trusted him anymore.

When you are forced to respond to snitches, it is better to repent than to make excuses. Instead of listing excuses or blaming Doeg, David repented, telling Ahimelech’s son “I have occasioned the death of all the persons of your father’s house.” (1 Samuel 22:22, ESV) It was wrong of David to have said “Give me five loaves of bread,” revealed that he did not have many followers, and failed to take measures to prevent Doeg’s snitching, knowing that Doeg could tell on Saul. (1 Samuel 21:1-3; 22:22) Moreover, David lied to Ahimelech, pretending as if he was on an official errand, while in fact he was running away from Saul. David confessed his mistakes and sins.

For the snitch, on the other hand, the price of snitching is grave. First, Doeg had the blood of innocent people on his hands. Many people ridiculed and denounced him, saying “oh, you are a mighty man (Gibbor), too?” (Psalm 52:1-2. Gibbor means “a champion”, “a valiant warrior”, and “a strong and outstanding man.”) He also received an eternal curse: “God will break you down forever; he will snatch and tear you from your tent; he will uproot you from the land of the living.” (Psalm 52:5) Doeg saw his line decimated; David soon killed 18,000 Edomites (2 Samuel 8:13-14), and Joab, the commander of his army, later struck down every man of Edom. (1 Kings 11:15-16) Reminding ourselves of the terrible price of snitching is one way to keep a careful watch over our mouths.

I pray that none of us will succumb to the temptation to make a quick profit at the expense of others’ trust and livelihood as Doeg did. Even as the ruthless world torments us, let us respond like David did—bravely, meekly, and above all righteously.

At the tail of the spring term,

Yours,

InKyung

Translated by Haejin 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