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라브리 소식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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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북위크, 마지막 책모임

사랑하는 기도 가족에게 올립니다.

숨만 쉬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에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라브리는 산속이라 그런지 다행히 해가 지면 서늘해지기에, 학기가 끝난 지금은 간사들도 앞마당에서 밤 산책을 즐기곤 합니다. 풀벌레 소리를 음악 삼아 걷다 보면 이내 라브리 곳곳에 깃든 이야기들이 생각납니다. 탈진하여 왔지만 돌아갈 때는 환한 미소와 함께 저희를 꼭 안아주던 손님, 가슴 아프도록 소리 없이 떠난 손님, 매일 저녁 부지런히 출동하던 ‘개밥클럽’ 멤버들 등, 올여름에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손님 한 분 한 분이 가져온 고민과 문제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이야기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엮여갈지 저는 미처 알지 못하지만, 기도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탄식하며 소망하고 싶은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이런 면에도 복음이 적용되는지 몰랐어요.” 한 대학생이 한 말입니다. 당연하게 여겼지만 악순환을 반복하던 자기관리 방식이 얼마나 왜곡된 인간상에 기초해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새로이 주신 정체성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변화되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 처음 깨닫고 눈을 반짝이던 모습이 참 멋졌습니다. 라브리에는 예수님을 믿는 손님도, 믿지 않는 손님도, 또는 둘 중 하나라고 말하기 애매한 손님도 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원자(Savior)’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예수님을 세상 만물과 우리 인생의 ‘주(Lord)’로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평소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더라도 특정 부분에선 실제적 불신앙(unfaith)의 삶을 붙들고 있곤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관계든, 사회적 관습이든, 침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스마트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간에, 이 영역만큼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혹 여러분도 이런 영적 사각지대를 갖고 계신지요?

어떤 때는 이런 사각지대가 막연한 불안이나 의심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은연중에 이런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기엔 너무 사소하거나 거대하거나 수치스럽거나 막막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라브리에선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민들을 기독교의 관점으로 탐구하고 실천해 본 손님들 덕분에 매일매일 흥미진진했습니다. 시간에 쫓기다 온 손님은 모든 시간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자본 축적에 지친 손님은 돈과 일에 대해 바른 대답을 찾고 돌아갔습니다. 또한 사회와 교회 안의 비인격적인 ‘진도 빼기’에 회의를 느낀 손님은 누림과 쉼에 대해, 최고의 결과물이 돼야 한다는 압박을 받던 손님은 우리의 유한함과 서로 의지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대학생은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삶은 진심으로 소통하는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그러한 관계를 힘들어하면서도 갈망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주간 공부하여 티타임에 「어려운 대화 하는 법」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긴 분량이었음에도 지루할 틈 없이 아주 진솔하고 알차서,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에게 감동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손님은 그날 밤 실제로 소중한 사람들과 어려운 대화를 시도해 보았는데, 바라던 것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손님도 튜터도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한동안 눈물과 웃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라브리를 올해 두 번째로 찾은 연대 공대 기도 모임은 자신들의 고민인 ‘미디어’를 그저 고민 상태로 두지 않고, 성경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심지어 미디어 중독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주는 앱을 개발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이어서 몇십 개의 질문을 싸 들고 와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띤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이들의 문제 인식, 실천력, 그리고 서로를 향한 지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론 라브리 간사들이(특히 새내기인 제가) 모든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끄럽게도 손님이 정직한 대화를 나누는 데 의도치 않게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손님이 저희의 못남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인내하도록 마음을 녹이시고, 저희의 실수로 손님이 부적절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음에도 (놀랍도록 그 내용만 쏘옥!) 잊어버리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전율하곤 합니다.

또한 간사들이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라브리에 더 시기적절한 도움을 주기도 하십니다. 올여름엔 유독 서로 잘 배려해 주시는 장기 손님들 덕분에 얼마나 든든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헬퍼로 수고한 성준-미라 부부, 중희-소리 부부, 채은 님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탁월한 음식과 따뜻한 환대, 시시때때로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 주는 모습이 큰 감동과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늘 일하시며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일할 마음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빌레몬서 2:13), 올여름 땀과 눈물로 고군분투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시고 더 친밀하게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질문을 내려놓고 그분에게서 답을 찾았다 해도, 그 후의 여정이 마냥 꽃밭인 건 결코 아닙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북위크는 기독교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상사 악마가 부하 악마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법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의 편지를 중간중간 함께 읽고 토론했습니다. 루이스의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과 모임장 정인영 선생님의 유쾌명쾌한 인도(베트남에서부터 일부러 날아와 맹활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참가자 총 19명의 솔직함과 개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참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매 책 모임마다 “이거 내 얘기인가?” 하며 양심에 귀 기울이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악마는 지어내지 못하는 ‘사심 없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11편에 나오는 ‘내장과 양파’ 요리와 코코아를 직접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 17편에서 영감을 받은 「취향과 기독교」 강의와 미니 콘서트에서 마음을 저미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준 김종원-이지혜 부부의 방문도 뜻깊었습니다. 마지막 밤에는 서로 소화하고 실천하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발표했는데, 차분하게 생각을 나눈 10대 손님들도 있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한 편 더 쓴 사람도 있고, 한국 라브리 최초로 갱스터 랩을 선보인 손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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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학기와 북위크에 다녀가신 손님들의 캐리커처(?). 외국인 손님들이 한국 이름을 외우는 걸 도우려고 여러 명이 보드에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라브리에 다녀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뜨끔한 것은 26번째 편지에 나오는 ‘아량 싸움 망상증(generous conflict illusion)’입니다. 한 예로, 상대가 차를 마시자고 할 때 자신은 상대를 ‘위해서’ 양보한다고 생각합니다(“난 별로 생각 없지만 당신이 원하면 마실게”). 하지만 상대 역시 나에게 양보하려 하면, 도리어 나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기 의’가 상하여 화가 나는 경우랄까요.

루이스는 “애당초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익을 포기”하는 형식을 갖추게 하는 게 사탄의 전략이라 말합니다. 마음의 중심에 ‘비이기적인 나의 자아’가 자리한 셈이지요. 그 밑에는 지옥의 철학, 즉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 “누군가 얻는 게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은 게 있는 법”,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라는 원칙이 도사리고 있습니다(18번째 편지).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법은 다릅니다. “한 자아에게 좋은 것은 다른 자아한테도 좋은 것”이란 원칙, 곧 넘쳐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각 사람은 뚜렷이 구별되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섬기고 협력하는 관계이지요. 예수님을 주(Lord)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약육강식과 이기주의의 법을 따르던 것을 그만두고 예수님과의 연합 안에서 내 삶의 의미와 희망이신 그분을 늘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음 학기 일정을 알려드리니 함께 기도해 주세요.

  • 가을 학기: 2026년 9월 29일(화) ~ 10월 18일(일)
  • 라브리 특별 강좌 및 창조론 필드트립: 2026년 10월 7일(수) ~ 10월 9일(금)
    • 양승훈 교수, 신국원 교수, 김도형 목사 등과 함께하는 모임입니다. 기독교 세계관과 창조론에 관심 있는 분들은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죄송하오나 숙박은 불가합니다).
    • 일정 | 10/7(수) 저녁: 세계관 대담, 10/8(목) 오후: 세계관 및 창조론 강좌, 10/9(금): 창조론 필드트립. 창조론 필드트립에 관해선 김도형 목사(010-5491-8815)에게 연락주세요.
  • 고3 단체방문: 2026년 11월 ~ 12월
  • 라브리 기독교 세계관 학교: 2027년 1월 11일(월) ~ 1월 14일(목)
    • 주제 |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 목적 |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기독교 세계관. 구도자가 구도자에게, 자신의 정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AI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읽고 생각하고 자기 목소리로 써 내려간 글을 기다립니다. AI 활용에 대해선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의 방침을 참고해 주세요. 20~25분 발제분량(A4 4~5페이지)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 등록 | 현재 발제자만 사전 신청을 받습니다. 발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9월 26일(토)까지 registration@labri.kr로 메일 주세요. 가을에 사전 Zoom 모임이 있을 예정입니다.
  • 겨울 학기: 2027년 1월 19일(화) ~ 2월 1일(월)
    • 현재 10일 이상 장기숙박하시는 손님만 사전 신청을 받습니다.

또 몇 가지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라브리에 다녀간 손님들과 스태프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께 순종하며 감사와 인내와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 간사들의 건강이 회복되어 손님들을 더 지혜롭게 섬기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속히 새로운 간사를 보내 주시도록
  • 수목장 분할 측량 및 인허가 비용으로 라브리 재정이 휘청했습니다. 알맞게 채워지도록, 그리고 백암당 증축을 위한 계획이 신중하게 차곡차곡 진행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온 우주와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편지를 마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로마서 14:8–9) 사랑하는 기도가족의 모든 시간과 모든 삶의 영역이 그 자체로 찬양(doxology)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8월 14일

아침 공기를 맡으며

혜진 올림

L'Abri Newsletter, September 2026

English translation coming soon